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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에서 활약중인 손흥민 선수가 경기 중 퇴장을 당한 일이 있었다. 손흥민 선수의 백태클에 넘어진 상대선수가 심각한 부상(발목 골절)을 입고 받은 레드카드였다. 기자는 사건이 일어난 며칠 뒤 관련 영상을 찾아보기 위해 검색을 시도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영상을 찾기 어려웠고, 특히 백태클 전후 상황을 자세히 보여주는 영상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영상을 찾기 어렵다는 것은 두 가지 사실을 함축한다. 중계를 한 BBC방송에서 부상장면을 여러 번 내보내지 않았다는 것이 하나고, 관중들 역시 개별 영상을 촬영해 업로드한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 다른 하나다. BBC는 그 후에도 이 비극적 순간에 관한 영상 출력를 자제했다. 다만 손흥민 선수에게 주어진 레드카드가 적절했는지 경기규칙 측면에서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보고 토론하는 방송을 내보냈을 뿐이다. 비극을 사실 그대로 전달하되 과장이나 재생산을 자제하는 것. 한국과 차이나는 영국 사회의 면모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만약 이 사건이 한국에서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방송사는 부상을 당해 고통스러워 하는 선수와 태클한 선수 각각의 얼굴 표정 및 태도 등을 자세히, 반복적으로 편집해 보여주지 않았을까? 몇몇 관중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찍은 여러 영상들을 근거로 손흥민 선수의 잘잘못을 가리려는데 혈안이 되지 않았을까?

 

비극에 관한 감정적인 보도와 재생산을 경계하는 것은 영국뿐 아니라 다른 서구 국가에서도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올 초, 뉴질랜드에서 백인 우월주의자가 무슬람 사원을 공격해 수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이 있었다. 뉴질랜드의 총리인 저신다 아던은 곧장 히잡을 쓰고 피해자 가족을 찾아 비통한 표정으로 위로를 전했다. 그 공감하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진정성을 느껴 지도자로서 그녀의 지도력이 세계적인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아던 총리가 피해자들과 감정적으로 깊이 공감했던 것과는 별개로, 그녀가 테러범을 대하는 방식과 테러 보도에 접근하는 방식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었다. 아던 총리는 테러범의 이름과 얼굴을 알리고 그에 관한 보도를 하는 것이 백인우월주의 사상과 테러범에게 유명세를 더해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테러범 정보에 관한 보도를 극도로 자제할 것임을 공표했고 실행에 옮겼다. 영국과 뉴질랜드 사례의 공통점은 사건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을 지속하기 보다는 재발방지를 목표로 한 토론과 대책에 사회의 관심과 에너지를 집중했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 스스로를 한 번 성찰해보자. 올 한 해 한국의 프라임 뉴스타임에 가족 살해범, 연쇄 살인범에 관한 보도들이 얼마나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헤드라인을 장식했는가. 애석하게도 현재 한국사회는 비극 자체를 소비하는데만 전 국민적 에너지가 집중되고 재발방지를 위한 토론과 정책은 모두의 남의 일이 되고 있는 듯 하다.

 

불난집에 불구경 하듯, 끔직하고 비극적인 사건에 호기심이 생기거나 심지어 흥미를 느끼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일 수 있다. 그러나 문명화된 시민으로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비극에 흥미를 느끼는 자신을 절제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과잉감정의 절제로 얻은 새로운 에너지를 문제해결을 위한 토론과 해결책의 추진에 쏟을 수 있다. 우선적 공감과 이성적 대처 사이의 균형과 조화가 있어야만 우리 사회는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오늘부터라도 불난집 앞에서 불구경을 하고싶은 때가 오면 자신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 보자. 만약 피해자들 향한 측은지심이 들었다 사라진 후에도 불을 계속 보고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그 때가 바로 멈출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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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12-01 16: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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