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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달간 영국에서는 브렉시트: 앤드게임이 절찬 상영 중이다. 브렉시트를 현실로 만들기 위한 존슨 총리의 거침없는 공세와 이에 맞서는 야당의 수세가 볼만하다. 같은 기간 한국 국회는 주지하다시피 조국 전법무부 장관 문제로 들썩였다. 양국의 국회는 어느 곳 할 것 없이 인신공격성 발언, 추측성 공격, 비열한 정치술수가 난무했다. 그러나 영국과 한국 국회 사이에는 한 끗 차이가 있는데, 그 한 끗은 바로 영국 국회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단 한 번의 파행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 기준으로 보자면, 올 한 해 영국정치에는 파행거리가 넘쳐났다. 일례로 최근 보리스 존슨 총리는 브렉시트 강행을 위해 하원의 동의없이 본회의 개회시점을 늦추는 강수(혹은 꼼수)를 뒀다. 한국이었다면 국회에서 고성 및 몸싸움, 삭발 및 단식 투쟁, 그리고 장외투쟁의 쓰리콤보가 예견되는 일이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 파행이 없었다. 이유가 뭘까?

 

필자가 보기에 영국 국회가 파행되지 않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역설적이게도 본회의 회의장 안에서 의원들이 할 말을 다 하기 때문인 듯하다. 영국 정치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시끄러운 야유와 고성이 오가는 영국 국회 특유의 격렬한 토론 장면을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격렬할 토론 분위기 속에서도 듣는 의원이 상대 말을 끊거나 발언 중이던 의원이 말을 맺지 못하고 격노하는 경우는 없다.

 

이것이 가능한 비결은 영국 국회의 독특한 발언 형식에 있다. 영국 국회의 발언 형식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발언 시 다른 의원을 이름으로 지칭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같은 당 의원들을 칭할 때는 존경하는 친구-my honorable friend”, 상대 당 의원들을 칭할 때는 존경하는 멤버-the honorable member” 라고 할 뿐이다. 다소 길게 느껴지는 이 호칭이 발언의 시작에 붙으면 뒤이은 내용이 아무리 부정적이어도 기본적인 존중의 태도를 가진듯 한 느낌을 주게 된다. 사실 한국에서도 비슷한 호칭으로 존경하는 ooo의원님이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하지만, 중간에 의원의 이름이 들어간다는 면에서 어감의 차이가 크다.

 

두 번째 특이점은 발언할 때 의장을 향해 말을 하는 간접 화법의 형식을 취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발언의 내용이 상대 당의 리더를 타깃으로 질책하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상대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마치 내외를 하듯 의장에게 호소하는 형식으로 말한다.

 

이 두 가지 격식이 토론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발언의 초입에 점잖은 호칭이 들어가고, 그마저도 의장을 바라보며 발언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감정적인 직접충돌 가능성은 줄어든다.

여야는 신념은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나라를 위해 더 나은 길을 함께 찾아야 하는 존재다. 따라서 잘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갈등의 골이 깊을 대로 깊은 관계가 생산적인 싸움을 하려면, 싸움 과정에서 지키는 사소한 규칙들이 매우 중요하다. 상호존대, 선 경청 후 발언, 의장 통한 간접화법 같은 규칙들 말이다. 이 규칙들을 강한 처벌 규정과 묶어 국회법으로 만들고 지키려 노력한다면 잦은 국회 파행을 막는데 효과가 있지 않을까?

 

다가오는 총선에서 선출되시는 의원님들께서는 우렁찬 발성이 아닌 매너 있는 화법부터 연구하시길 바라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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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11-07 15: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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